국내 신석기시대 유적은 약 500곳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주로 강안이나 해안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특히 두만강·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 유역이나 서해도서지역·남해도서지역에 밀집·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충청도와 남부 내륙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어 큰 강이나 해안·도서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내륙 깊숙한 지역까지 퍼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신석기시대 유적은 약 500곳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주로 강안이나 해안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특히 두만강·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 유역이나 서해도서지역·남해도서지역에 밀집·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충청도와 남부 내륙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어 큰 강이나 해안·도서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내륙 깊숙한 지역까지 퍼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압록강 중·하류와 청천강 하류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미송리 유적이 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소주산 하층문화와 동일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기 이후는 타래문·번개문·횡주어골문 등 중국 요령지역의 신석기 문화와 유사하면서도 우리나라 동북지역과 관련있는 문화요소를 지니고 있다.
의주 미송리유적
의주읍 미송리에 있는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동굴 주거지 유적으로 신석기문화층과 청동기문화층이 있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편과 그물추 2점, 석촉반제품, 곡옥파편처럼 생긴 장신구와 그 밖에 골제첨두기들도 3점 출토되었다. 토기의 문양은 집선감각문과 연속된 지자문도 있다. 기형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납작바닥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신석기시대 후기로 여겨지고 있다.
두만강 상류와 하류, 그리고 동북해안에 걸쳐 밀집·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회령 검은개봉, 웅기의 서포항, 청진의 농포동·원수대 유적이 있으며,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신석기문화와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문화와 연관성을 보여준다.
서포항 유적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동에 위치한다. 유적은 서포항동 마을 동북쪽 해발 5~7m 높이의 얕은 산비탈 서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에는 석호가 발달해 있고,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어 선사시대 먹거리가 풍부하여 살림살이에 알맞은 곳이었다. 1960~1964년까지 5차례 발굴조사 되었으며, 구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9개의 문화층에서 무덤 2기와 신석기시대 주거지 21기 등을 확인하였다.
이 유적은 기원전 6,000년 경으로 편년되며, 1·2기층은 신석기 전기, 3기층은 신석기 중기, 4·5기층은 신석기 후기로 보고 있다.
검은개봉 유적
함경북도 유선군 검은개봉에 있는 신석기시대 포함층 유적이다. 검은개봉은 두만강변의 높은 언덕위에 솟아있는 봉우리로서 3면은 가파른 경사면을 이루나 동남쪽만이 말안장 모양의 고개마루를 이루고 있다. 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편과 흑요석기, 마제석기 등이 채집되었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방, 연해주 및 아무르 중하류지방의 신석기 유적과 유사성이 있다.
동해안지역에서 발견조사 된 신석기유적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은편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양양 오산리유적과 지경리유적이 있다. 동해안에 분포하고 있는 신석기유적들은 해안가에 형성된 석호 주변에 위치한 것들이 많아 당시 채집·어로생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양양 오산리유적
강원동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으로, 남한지역에서 측정된 방사성탄소연대값으로는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는 유적이다. 유적은 동해안 내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모래언덕 위에 있으며, 바로 옆에 ‘쌍호’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다. 오산리 유적은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6차에 걸쳐서 발굴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 보다 이른시기 납작한 바닥의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얼굴모양의 토기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청원 쌍청리유적, 대전 둔산동유적, 영동 금정리유적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큰 강가가 아닌 산간 깊숙한 내륙지역에 입지하고 있고, 어로와 관련된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는다. 그리고 후기 신석기시대 토기들과 연관되어 있어 신석기시대 후기에 내륙지역에 새로운 신석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원 쌍청리 유적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쌍청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주거유적으로, 미호천으로 합류되는 병천천변 50m정도의 얕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2기의 움집과 토기,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곧은 입술에 뾰족-둥근밑을 가진 것과, 짧은 목에 밑이 둥글거나 말각평저형(抹角平底)이며 얕은 단지류가 있다. 무늬는 새김무늬와 찍은무늬로 대별된다. 이 유적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토기가 나와 ‘금강식토기’로 설정되었다. 금강식토기(錦江式土器)는 대전 둔산 유적, 영동 금정리 등 금강유역 주변에서 주로 쓰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연속된 찍은 무늬가 특징적으로 베풀어진 토기이다.
대전 둔산동 유적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유적이 있는 둔산동 일대의 지형은 2개의 작은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펼쳐진 넓은 들판(해발 35-40m)을 끼고 20-30m 높이의 얕은 야산(해발 50-60m)에 펼쳐져 있다. 신석기시대 유구로는 집자리(住居址)로 추정되는 15기의 움(竪穴)이 나왔다. 이 움들은 대개 평면 원형(圓形)을 이루며 평균면적은 5.4㎡ 정도 되는 소형의 것들이다. 화덕자리(爐址)의 시설은 없다. 움의 깊이는 대개 40-50㎝ 전후로서 그다지 깊지 않아 저장용 움일 가능성도 적은 편이다. 수혈 내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토기와 석기류, 그리고 특이하게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낫 1점 등이 있다.
낙동강 하구 뿐 아니라 남해안 일대가 전체적인 생활터전이었으며, 패총을 중심으로 많은 유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남해안지역은 일찍이 동삼동패총과 수가리패총이 조사되었으며, 이른시기에 납작밑의 융기문 토기가 사용되다가, 이후 압인문·태선식빗살무늬토기·이중구연토기들이 각 시기별 확인되고 있다.
부산 동삼동 유적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에 있는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유적으로, 사적 제266호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대 초반부터 널리 알려져 당시 경성제대 예과의 교수로 있던 橫山將三郞 및 몇몇 일본인들이 소규모로 시굴한 바 있으며, 1962-64년에는 미국인 L.L.Sample이 발굴하였다. 1969-71년 사이에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3차례에 걸쳐 공동 발굴하였다. 석기, 토기, 뼈도구, 고래뼈, 물고기, 조개 등의 자연유물, 치레걸이 등 다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남해안지방에서 주로 출토되는 덧무늬토기의 출토빈도가 매우 높아 한국 신석기에서 덧무늬토기가 차지하는 위치, 해당시기, 덧무늬토기의 출자와 기원문제를 해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욱이 도도로끼식 토기 등 일본의 죠몽(繩文)토기들도 출토되어 당시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부산 가덕도 유적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가덕도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다. 한국문물연구원이 2010년 6월 17일부터 2011년 7월 22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의 문화층에서 다량의 유물과 인골, 집석 유구가 발견되었다. 가덕도 신석기 유적은 신석기 시대 조기부터 전기에 이르는 기원전 5,000년~4,000년 무렵에 해당하는 묘역 시설로, 지금까지 조사된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묘역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라 할 수 있다. 또 굴장의 비율이 높은 점 등 기존의 매장 유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묘역과 인골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매장 의례를 비롯한 사회상 등의 규명에 매우 획기적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해 수가리 패총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수가리 가동(현재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유적으로, 부산대학교박물관이 1978년과 1979년 2차에 걸쳐 발굴하였다. 유적은 해발 241m인 금병산의 북쪽 끝자락으로 해발 7~8m정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유적의 앞으로는 서낙동강의 지류인 조만강이 흐르고 있다. 유적의 뒤쪽인 금병산을 넘으면 범방(凡方) 조개무지가 있다. 수가리 유적에서 중요한 점은 신석기시대의 해수면 상승과 관련되는 자료를 제시한 점이다. 즉 현재의 해발고도 아래에 있는 층에서 마모된 조가비층을 찾아내었으며 이는 당시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았던 증거라고 추정되었다.
남부내륙지역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대개가 큰 강의 지류를 따라 입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신석기시대 후기의 유적으로 토기 양식이 서로 비슷하고 청동기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유적에서 확인되는 토기들은 중부내륙지역과 유사하며 후기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내륙지역에 까지 그 분포범위를 확대시켜 나갔음을 알 수 있다.
김천 송죽리 유적
경상북도 금릉군(金陵郡, 現 김천시) 구성면(龜城面) 송죽리 고목 마을에 있는 선사 유적으로 신석기·청동기시대 마을 유적과 고인돌(支石墓) 및 고려·조선시대 유적이 함께 있는 복합 유적이다. 1989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1991~92년에 계명대학교박물관이 발굴하였다. 유적은 강가 충적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모두 10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長方形)이 9기인데 비하여 원형(圓形)은 1기로서 장방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출토유물은 바리모양(鉢形)과 단지모양(壺形)의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저부(底部)는 뾰족밑(尖底), 둥근밑(圓底), 납작밑(平底)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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